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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6-26 11:44
Ave Maria(Caccini) - Inessa Galante(이네싸 갈란테)
 글쓴이 : 홍성욱
조회 : 2,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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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e Maria(Caccini)

Sung By
Inessa Galante(이네싸 갈란테)


 
Ave Maria, Ave Maria
Ave Maria, Ave Maria
Ave Maria, Ave Maria
Ave Maria, Ave Maria
Ave Maria, Ave Maria
Ave Maria, Ave Maria



 




홍성욱의 음악 감상실 메모





마리아 (Maria)

아베 마리아는 그리스도교의 가장 대표적인 성모 찬가로, 
고금의 작곡가의 손에 의해 수많은 작품이 만들어졌습니다. 
가사는 라틴어로 되어 있고 루가 복음의 전반부와 15세기 중반 
성 베르나르도의 시로 이루어집니다. 

또한 아베 마리아는 가톨릭 교회의 주요 기도문 중 Glorla(대영광송), 
Credo(사도신경) 등과 더불어 가장 많이 인용되는 천사의 축복, 
성모 영보 때의 마리아에 대한 찬미와 사촌 엘리사벳의 축하 노래가 
어우러져 이루어진 기도문을 아름다운 선율로 옮겨 놓은 것이기도 합니다.

아베 마리아는 구노와 슈베르트 그리고 지금 흐르는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가 있습니다.
C.F.구노의 곡은 아름다운 선율로 일반에게 널리 알려지기도 했고 
슈베르트의 곡은 천사의 축사 같은 느낌을 주고 
기울리오 카치니(Giulio Caccini 1545-1618) 의 아베마리아는 
가장 편안하게 다가오는 아베마리아인 것 같습니다.









마리아 (Maria) :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
가톨릭·동방교회 등에서는 성모(聖母) 또는 성모 마리아라고 존칭한다.
신약성서에 의하면 갈릴리 지방 나자렛 마을에 살았고, 목수 요셉과 혼약하였으나 천사의 계시로 처녀잉태하였다. 출산이 임박하여 헤로데왕의 호적 일제조사 명령이 내려 베들레헴으로 갔으나 숙소를 잡을 수 없어 교외의 동굴 안에 있는 마구간에 들었다가 거기서 예수를 낳았다. 그런데 헤로데가 베들레헴에 장차 왕이 될 아기가 태어났다고 찾아온 동방의 박사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믿고, 이 영아를 죽이려고 하였기 때문에 화난을 피해 일단 이집트로 피신했다가, 후에 나자렛으로 돌아와 그리스도가 공(公)생활을 시작하는 30세 무렵까지 그 곳에서 조용한 생활을 보냈다. 그리스도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다가, 마지막에 십자가에 처형되자 그 십자가 곁에서 끝까지 그리스도와 함께 고통을 나누었다.

현재 가톨릭의 교의(敎義)에 의하면 마리아는 죽은 후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갔는데, 이것을 ‘성모 몽소승천’이라고 한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信心)은 초대교회 때부터 성(盛)하여 구세주의 어머니로서 숭배되었고, 은총의 중개자로서도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따라서 마리아를 기리는 축일도 많은데, 주의 봉헌축일(2월 2일),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12월 8일)가 그 주된 것이다. 예로부터 마리아는 회화 ·조각 ·음악 등의 소재가 되어, 화제(畵題)로서는 《성모 영보(聖母領報)》 《성모자(聖母子)》 《피에타》 등이 알려져 있으며, 걸작이라고 할만한 작품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음악에서는 아르카텔트나 구노의 가곡 《아베 마리아》가 유명하다.

아베 마리아는 그리스도교의 가장 대표적인 성모 찬가로, 고금의 작곡가의 손에 의해 수많은 작품이 만들어졌다. 가사는 라틴어로 되어 있고 루가 복음의 전반부와 15세기 중반 성 베르나르도의 시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아베 마리아는 가톨릭 교회의 주요 기도문 중 GLORIA(대영광송), CREDO(사도신경) 등과 더불어 가장 많이 인용되는 천사의 축복, 성모 영보 때의 마리아에 대한 찬미와 사촌 엘리사벳의 축하 노래가 어우러져 이루어진 기도문을 아름다운 선율로 옮겨 놓은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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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essa Galante(이네싸 갈란테)


카치니의 '아베마리아'하면 으레 떠오르는 이름 하나가 있다.
이네싸 갈란테.
그녀는 이 단 한 곡만으로도 세계의 비평가들의 귀를 사로잡아 버린 우리시대 최고의 소프라노중 한명이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비로소 그녀의 이름을 세계무대에 널리 알리게 된 이네싸 갈란테는 라트비아의 리가라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였던 어머니와 테너가수였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에게 음악은 숨쉬는 공기와도 같이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음악적 재능 또한 천부적이었다.
처음 그녀는 음악가의 길을 가기보다는 의사나 철학자가 되고 싶어 했지만 우연히 그녀가 노래하는 모습을 보게 된 한 음악가로부터 음악을 할 것을 제의받으면서 성악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네싸 갈란테는 1977년 리가 음악학교에 입학하여 Rachel Shulov에게 사사했고 학생 시절부터 리가 오페라 하우스에서 활동을 했다. 리가를 위시하여 주변의 동구권 국가들에서 연주를 했으며 Kirov Opera에서 정규 소프라노 가수로 활동하게 되면서 모스코와 키에브, 오데사로 그 활동영역을 넓히게 된다.
미국과 캐나다의 순회공연은 비평가들에게 그녀의 존재에 대하여 주목을 하게 만들었으며 예후디 메뉴인경과 주빈 메타는 그녀에게 서부 진영으로의 데뷔를 제안하였다. 그러나 공산진영과 민주진영의 대립이라는 시대적 상황은 그녀의 서부 진영에서의 활동을 제약하는 요소였다.
1991년 라트비아가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하게 되면서 그녀는 비로소 세계무대로의 데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1992년 독일 만하임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파미나 역할의 연주를 필두로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오페라 [카르멘]에서 돈 호세의 버려진 애인 미카엘라역을 호연하면서 그녀는 비평가들에게 그리고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다.
1995년 Campion Record에서 제작된 [Debut] 앨범의 선풍적인 인기는 세계무대에 그녀의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것이었다.

이네싸 갈란테는 1996년 10월 스코틀랜드 왕립 오케스트라와의 공연으로 영국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었고, 1997년 세계적인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의 70회 생일을 기념하는 에비앙 페스티벌에 마지막 날 공연에서 오프닝을 하였으며 뉴포트 뮤직 페스티벌과 뉴욕 바드 뮤직 페스티벌에서 오프닝을 맡으면서 미국에 데뷔를 했다

그녀는 제니퍼 라모어와 함께 로스엔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미카엘라의 [카르멘]을 노래했다. 그녀는 플로리다 그랜드 오페라, 발티모어 오페라와 디트로이트 오페라에 [라보엠]의 미미 역을 하도록 초대되었으며 위그모어 홀과 알버트 로얄홀에서도 그녀가 노래하는 것을 들을 수가 있다. 이네싸 갈란테는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종종 네덜란드에서 공연을 가졌고, 그 곳에서 그녀는 스타로서 위치를 굳건히 하였다. 또한 콘서트헤보우의 -가을 오페라 콘서트-시리즈에서 열연하고 있다.

그녀는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코벤트 가든 로얄오페라 하우스의 오케스트라, 로스 엔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네덜란드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해파 심포니 오케스트라, 예루살렘 심포니 오케스트라단과 함께 연주를 해 오고 있다